외국 소설 명대사 모음

외국 소설 명대사 모음

#외국 소설속 명대사 모음
< 백년의 고독 / 가르시아 마르케스 >
* 사람은 죽어야 할 때 죽는게 아니라 죽을 수 있을 때 죽는거라고 아버님께 말씀 드려주세요.
* 아르까디오는 사랑 때문에 생기는 불안감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았던 방에서 불과 몇 미터 떨어져 있는, 처음으로 권력의 확실함을 경험 했던, 한쪽이 부서져버린 그 학교에서 형식을 갖춰 죽는다는게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사형이 선고되었을 때 그가 느낀 감정은 두려움이 아니라 삶에 대한 향수였다. 마지막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까지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종이시계 / 앤 타일러 >
* 그렇지만 매기는 잊지 않았다. 종종 뚫을 수 없는 유리막과 같은 아이러의 불만스러운 표정을 보면서 그녀는 이 지상에서 진정한 변화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남편은 바꿀 수 있어도 상황은 바꿀 수 없다. 사람은 바꿀 수 있었도 상황의 본질은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아가고 있을 뿐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이 세상은 마치 저 유원지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작고 푸른 찻잔 같고, 사람들은 모두 원심력에 의해 제자리에 고정되어 앉아있을 뿐이다.

< 견딜 수 없는, 미쳐버리고 싶은 / 밀란 쿤데라 >
* 사실 그는 그녀를 만나기 전의 여자들에게는 거칠게 군 편이었다. 그렇다고 특별히 무자비한 모습을 보이거나 냉혹하지는 않았지만, 한때 거친 남자가 되기를 몹시 원했던건 사실이다. 물론 철없던 시절의 욕망이었다. 대개 유치한 욕망들은 성숙해지면서 유혹에 저항하는 법이지만, 때로 나이가 들어서까지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어떤 역할을 구체화시킬 필요가 있을 경우 유치한 욕망은 재빨리 그런 기회를 이용하려 한다.

< 독일인의 사랑 / 막스 뮐러 >
* 두 인간의 영혼이 만나는 것이, 소용돌이치는 열풍이 모았다가 훑어 버리는 저 사막의 모래알의 만남과 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 행운이 마주치게 한 우리의 영혼들을 꼭 붙잡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 영혼들은 우리를 위해 점지된 것이니까. 그것을 위해 살고 싸우며 죽어갈 용기만 갖고 있다면, 어떤 힘두 우리에게서 그 혼을 뺏아가지 못하리라.
* 인간의 마음에 생겨나는 최초의 공포는 신에게서 버림받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생활은 그 공포를 몰아낸다. 바로 신의 형상에 따라 창조된 인간들이 외로움에 빠진 우리를 위로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위로와 사랑마저 떠나가면, 우리는 실로 신과 인간 모두에게서 버림 받았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절감하게 된다.
* 아, 인간은 왜 이다지도 삶을 유회하는 것일까. 매일 매일이 마지막 날일 수도 있으며, 잃어버린 시간은 곧 영원의 상실임을 생각하지 않고, 왜 이렇듯 자신이 행할 수 있는 최선의 것과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을 하루하루 미룬단 말인가.

< 향수 / 밀란 쿤데라 >
* 그리스어로 귀환은 <노스토스 nostos>이다. 그리스어로 <알고스 algos>는 괴로움을 뜻한다. 노스토스와 알고스의 합성어인 <노스탈지> 즉 향수란 돌아가고자 하는 채워지지 않는 욕구에서 비롯된 괴로움이다.

< 정체성 / 밀란 쿤데라 >
* 우정이란 기억력의 원활한 작용을 위해 인간에게 필요 불가결한 것이야. 과거를 기억하고 그것을 항상 가지고 다니는 것은 아마도 흔히 말하듯 자아의 총체성을 보존하기 위한 필요 조건일 거야. 자아가 위축되지 않고 그 부피를 간직하기 위해서는 화분에 물을 주듯 추억에도 물을 주어야만 하며 이 물주기가 과거의 증인, 말하자면 친구들과 규칙적인 접촉을 요구하는 거야. 그들은 우리의 거울이야. 우리의 기억인 셈이지. 우리가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이란 우리가 자아를 비춰볼 수 있도록 그들이 이따금 거울의 윤을 내주는 것일 뿐이야.

< 바베트의 만찬 / 이자크 디네센 >
* 이제 난 깨달았어요. 사람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겠어요. 그리고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철저히 고독하며 사람들과 섞일 수 없는 이방인이라는 사실도 깨달았어요. 난, 난 전혀 두렵지 않아요.
* 아마도 모든 생명체들 가운데 새가 천사와 가장 닮았을거야. 경전에도 나오잖아. 천상과 지상을 오가는 모든 것은 신을 섬기며 천사도 그러하니라, 라고. 새는 하늘과 땅 사이를 오가는 동물이야. 또 이런 말도 있지. 그들은 거만하게 우쭐거리는 것으로 자신의 일을 더럽히지 않고, 노래 부르며 신께 부여받은 일을 한다고. 이것 역시 새가 하는 일이야. 새들이하는 이 모든 일을 본받으려 노력한다면, 천사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을꺼야.
* 우리 물고기는 사방의 지탱을 받아요.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믿고 그 속에서 조화를 이루며 몸을 맡기죠.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든, 어떤 길을 가든, 위대한 바닷물은 우리를 위해 모양을 바꾼답니다. 우리는 손이 없기에 아무것도 만들 수가 없지요. 그래서 신의 우주 속에 있는 그 어느 것도 쓸데없이 바꿔놓으려는 욕망을 품지 않아요. (중략) 우리는 밑에서 위를 올려다보며 우주의 질서를 읽지요.

<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 로맹 가리 >
* 새들은 왜 먼 바다의 섬들을 떠나 리마에서 북쪽으로 십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이 해변에서 죽는지 아무도 그에게 설명해주지 못했다. 새들은 더 남쪽도 더 북쪽도 아닌, 길이삼 킬로미터의 바로 이곳 좁은 모래사장 위에 떨어졌다. 새들에게는 이곳이 믿는 이들이영혼을 반환하려 간다는 인도의 성지 바라나시 같은 곳일 수도 있었다. 새들은 진짜 비상을 위해 이곳으로 와서 자신들의 몸뚱이를 던져 버리는 것일까.
* 과학은 모든 면에서 인간을 제압하고 있다. (중략) 영혼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야 할 터. 그것이야말로 영혼이 과학에 당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머잖아 학자들은 영혼의 정확한 부피와 밀도와 비상속도를 계산해낼 것이다.
* 바다란 소란스러우면서도 고요한 살아있는 형이상학, 바라볼 때마다 자신을 잊게 해주고 가라앉혀주는 광막함, 다가와 상처를 핥아주고 체념을 부추기는 닿을 수 있는 무한이었다.

< 비둘기 / 파트리크 쥐스킨트 >
* 보행은 마음을 달래줬다. 걷는 것에는 마음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어떤 힘이 있었다. 규칙적으로 발을 하나씩 데어놓고, 그와 동시에 팔을 리듬에 맞춰 휘젓고, 숨이 약간 가빠 오고, 맥박도 조금 긴장하고, 방향을 결정할 때와 중심을 잡는 데 필요한 눈과 귀를 사용하고, 살갗에 스치는 바람의 감각을 느끼고-그런 모든 것들이 설령 영혼이 형편없이 위축 되고 손상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다시 크고 넓게 만들어 주어서-마침내 정신과 육체가 모순 없이 서로 조화롭게 되는 일련의 현상들이었다.

< 유언 / 산도르 마라이 >
* “나는 평생 당신만을 사랑했소. 그러다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소. 빌마가 가로챈 편지만을 말하는게 아니오. 모든게 편지 때문만은 아닐 것이오. 사실 당신은 이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지 않았소. 반박하지 말아요. 그저 사랑하는 것으로 다가 아니오. 용감하게 사랑해야 하오. 도둑이나 앞날의 계획, 천상과 지상의 그 어떤 율법도 방해하지 못하도록 사랑해야 하오. 우리는 서로를 용가맣게 사랑하지 않았고… 그게 바로 문제였고, 그건 당신의 잘못이었소. 남자들이 사랑에서 보이는 용기는 하잘것 없기 때문이오. 사랑, 그것은 당신네 여자들의 작품이오. 사랑할 때 당신들은 위대하오. 그런데 당신은 실패했소. 그리고 당신이 실패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모든 것도 물거품이 되고 의무와 임무, 알맹이 없는삶이 되고 말았소. 남자들이 사랑에 책임이 있다는 말은 맞지 않소. 당신들이 영웅적으로사랑해야 하오. 그런데 당신은 여자로서 할 수 있는 최악의 행동을 했소. 당신은 자존심이 상해 도망쳤소. 이제 내 말을 믿소?”

(Visited 511 times, 1 visits today)

  • 포스트에 내용이 없으면 댓글 남겨 주세요.

외국 소설 명대사 모음”의 2개의 댓글

  • 2020년 4월 28일 8:53 오후
    Permalink

    “< 향수 / 밀란 쿤데라 >
    * 그리스어로 귀환은 <노스토스 nostos>이다. 그리스어로 <알고스 algos>는 괴로움을 뜻한다. 노스토스와 알고스의 합성어인 <노스탈지> 즉 향수란 돌아가고자 하는 채워지지 않는 욕구에서 비롯된 괴로움이다.”

    댓글달기
  • 2020년 6월 4일 11:25 오후
    Permalink

    “< 장미의 이름 / 움베르토 에코 >
    * 20세기 최고의 석학, 움베르토 에코가 쓴 놀라운 지적 추리 소설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과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프랜시스 베이컨의 경험주의 철학에, 에코 자신의 해박한 인류학적 지식과 현대의 기호학 이론이 무르녹아 있는 지적 보고라고 할 수 있다. 중세 수도원 생활에 대한 가장 훌륭한 입문서로 알려져 있고 이미 우리 나라에서도 모든 신학생들의 필독서로 자리잡고 있는 움베르토 에코의 필생의 역작이다.”

    댓글달기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영화 다시보기 포스트:

검색을 하면 편리합니다.